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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기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효시, 4·19혁명

  • 등록 2020.04.10 17:54:52

요즘 지하철역에는 개별 역사마다 특색 있는 그림이나 조형물을 전시해 놓는 ‘문화역사’가 종종 있어, 바쁜 출퇴근 시간에 잠시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국립서울현충원이 위치한 동작역, 서대문형무소가 위치한 독립문역 등이 그렇다. 이러한 점은 국립4·19민주묘지가 위치한 수유역도 마찬가지로, 묘소의 풍경과 고사리 손으로 헌화하는 유치원생들의 참배 장면 등이 전시되어 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칠 법하지만, 4월이 되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매년 4월 19일이 4·19혁명 기념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대한민국은 극도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36년과 6·25전쟁이 남긴 거대한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독재라는 또 다른 상처가 곪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권 후반기, 반민주 정책으로 민심이 이반되었음에도 제1공화국은 3·15부정선거 등 무리한 방법을 통해 노골적으로 재집권을 기도했다. 공권력과 결탁한 권력욕이 제1공화국의 연장을 성사시키려던 찰나,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스스로 일어났다.

 

야당 부통령 후보의 연설을 방해하고자 내려진 일요일 등교 지시에 반발해, 대구에서 학생들이 행했던 2·28민주운동이 그 시작이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전의 3·8민주의거, 마산의 3·15의거로 이어졌다. 특히 1960년 4월 18일 시위 후 귀가하던 고려대학생들이 폭행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이에 분개한 학생과 시민들은 다음 날인 4월 19일 대대적인 시위에 나서며 4·19혁명은 전국으로 확산됐다. 절정에 달한 시위에 이승만 대통령은 사퇴를 선언함으로써 4·19혁명은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이러한 4·19혁명은 우선 대한민국 최초로 국민이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 상당한 진전을 일궈낸 운동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또한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항일운동과 같이 학생이 주도했던 독립운동의 명맥을 민주화운동에서도 그대로 계승·발전시켰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또 4·19혁명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민주주의가 확립되기까지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효시가 되었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대한민국헌법 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4·19혁명은 대한민국의 헌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오늘날 많은 것들이 잊히고 새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사소하고 당연해 보이지만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있다. 지금 우리가 마치 숨을 쉬고 물을 마시듯 너무도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가 바로 이러한 것들에 해당한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확립되기까지 30여 년 동안 수많은 애국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이러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의 기반에서 피어난 평화와 번영이 퇴색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다. 이것이 우리가 4·19혁명에서 비롯된 민주주의를 더 성숙하게 가꿔 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어렵게 싹튼 민주주의를 잘 키워나갈 수 있도록, 60주년을 맞은 4·19혁명을 다시금 되새기며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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