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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복 70주년, 아직도 못 갚은 빚

이 경 수 논설위원

기자  2015.08.18 09: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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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여년에 걸친 춘추전국 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사람은 진()나라의 임금 영정(진시황)이다. 그러나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진나라가 영정시대에 갑자기 강대국이 되어서 중국을 통일한 것이 아니라 영정의 증조부되는 진 효공(영거량)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효공 영거량은 당시 전국 7웅 중 가장 가난하고 국력이 약한 나라가 진나라임을 깨닫고 부국강병을 위해 중국 전역에서 인재를 등용하였다. 이 때 나타난 이가 바로 위나라 사람인 위앙(후일 땅을 하사받아 상앙이라 불림)인데, 위앙은 제자백가 중 법가의 전통을 이어받아 법을 바로 세움으로써 나라가 부강해 질 수 있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위앙이 펼친 정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표현으로 빌리자면 보훈정책을 철저히 시행한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국가들은 병농일치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평시에는 농사를 지으면서 전시에는 병역에 차출되는 제도인데, 문제는 병역에 차출되어 전쟁에 나가 죽거나 부상을 당해도 국가는 아무런 혜택을 주지 않았다. 그런 차에 위앙은 전쟁에 나가 죽거나 다친 이들의 가족에게 국가가 보상을 해주는 법을 만들어 그대로 시행하였다. 가족들 걱정으로 인해 전투에 소극적이었던 타국 군사들에 비해 진나라 군사들은 자기 자신이 잘못되더라도 국가가 나서 가족들을 보살펴주어 걱정없이 최선을 다해 전투에 임하였으니 진나라 군사들은 글자 그대로 천하무적의 강병이 될 수 있었고, 이 여세를 몰아 영거량의 후손인 영정이 중국을 통일하고 최초의 황제인 진시황이 될 수 있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우리 대한민국은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온 끝에 올림픽과 월드컵을 개최한 몇 개 안되는 나라이자 세계 12위의 경제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그 이면에는 나라 안과 밖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신 애국지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 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기에 자식들 교육은커녕 생계문제도 챙길 여력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해방된 조국의 현실을 보면 친일파의 자식들은 고등 교육을 받아 출세하면서 잘 먹고 잘 살지만, 독립투사의 자식들은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여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가야만 했다.

수년전 국회에서 독립투사들이 강제로 일제에 빼앗긴 재산을 환수해 후손에게 돌려주자는 법률안이 상정되었으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결국 폐기되고 말았다고 한다. 너무 오래된 일이고 기록조차 불분명하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최소한 친일파 재산을 환수하여 독립 유공자 자녀들에 대한 교육비나 생활자금으로 나누어 줄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한 특별법이라면 만들 수 있지 않은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일본은 우리에게 5억불의 배상금을 지불하였고, 박정희 정부는 그 돈으로 포항제철 건설을 비롯하여 산업발전의 종자돈으로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최소한 포항제철을 비롯해서 그 돈으로 설립된 국영기업체의 이익금 중 20% 정도는 기금으로 모아서 우선적으로 독립 유공자 후손들의 교육비와 생활자금 정도는 지급해야 정상이 아닌가?

지금도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에는 독립투사들의 후손들이 멸시와 가난의 굴레 속에서 지난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분들의 조상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겠다는 신념에서 가족들을 볼보지 못한 원죄가 후손들에게는 뼈아픈 상처로 머물고 있다. 그 후손들은 과연 누구를 원망할까? 가족보다는 나라를 생각한 선조들을 원망할까 아니면 그 잘나빠진 조국을 원망할까?

광복 70주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면서 갚지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