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우리사회에서 흔히 인구에 회자되는 말 중의 하나가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이다. 이 말인 즉슨 어떤 사람은 부모 잘 만나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고, 어떤 사람은 그저 그런 부모를 만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으며, 어떤 사람은 부모를 잘 못 만나 흙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부자 아빠⌟시리즈가 큰 유행을 타더니 마치 부자 아빠를 만나야 출세하고 행복해 진다는 잘못된 풍조가 형성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차피 돈이 인격이요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지만, 문제는 부의 원천이 본인이 아니라 오직 부모 잘 만나고 못 만난 탓이라면 이건 아니지 싶다.
원래 진정한 자본주의 사회란 공산주의 체제와 달리 자기 자신이 일하고 노력한 만큼 대접을 받고, 그만큼 댓가가 주어지는 사회라야 건강한 자본주의 사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평등이란 무조건적이고 무분별한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모 잘 만나고 잘 못난 것이 좌우한다면 그런 사회가 과연 건강한가? 우리 사회는 건강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가?
불과 10~20년 전만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희망의 사다리가 분명히 보였다. 비록 부모 잘 못 만나 가난하게 자라도 자기 자신이 노력해서 얼마든지 부를 축적하고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다. 가난한 청소부 아들이 시골 농부의 딸이 밤잠 안자고 노력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든지, 낮에 직장을 다니고 밤에 야간대학을 다녀서 승진했다든지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흔히 들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기 자신은 못배웠기 때문에 자식들만은 부모와 다른 삶을 살게 해주려고 논 팔고 소 팔아서 학비를 대고 공부하라 공부하라 잔소릴 해 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느 가정에서도 부모들이 공부하라 공부하라는 말이 사라졌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들에게 대물림을 하는 풍조가 강해지자, 부모들은 자식에게 공부하라는 말보다 부모의 무능을 부끄러워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나마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신분상승을 할 기회가 주어지는 대표적인 수단인 사법고시 제도가 사라지게 되고 소위 말하는 로 스쿨(법학전문 대학원)을 통해 변호사도 되고 판검사가 되는 세상에서는, 한해 등록금만 2,000만원 가량하는 로스쿨 등록금을 대 줄 수 없는 부모의 한탄이 자식에게 공부해서 출세하라는 말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 더 이상 정주영 신화와 노무현 신화가 나올 수가 없다. 이러니 자식들은 공공연하게 자기 자신의 노력을 할 생각에 앞서 부모의 경제력을 탓하는 풍조가 발생하게 되고, 소위 “잘되면 자기 탓, 잘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진실이 되어버리고 있다.
어느 기업가가 방금 태어난 손자에게 기념으로 수 억원의 주식을 주었다는 이야기,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 검증도 안된 재벌 자식들이 회사 몇 개씩 차고 있다는 이야기가 회자되더니, 이젠 어느 기업체 노조 간부들이 노사 협상에 자기 자식을 무시험으로 취업시킨다는 조건을 들고 나오고, 심지어는 국회의원들까지 제 자식 취업을 위해 압력을 행사하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니, 현대판 음서제도가 따로 있는게 아니다.
이런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나라가 망할 징조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이를 막을 국민적 합의와 제도적 정비가 꼭 필요하다.
희망이 없는 사회에서는 그저 부수고 엎어버려야 살 길이 생긴다는 단순무식한 본능만이 나오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개천에서도 용이 나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