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윤 섭 본지 칼럼리스트
지난 일요일 오후 북한산으로 단독 산행을 했다. 지난해 봄 축구 시합 도중 발목 골절로 인해 즐겨하던 산행을 중단한지 일 년여 만에 용기를 내 산행을 하게 된 것이다.
봄기운이 완연한 거리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니 조금은 설레고 조금은 두려움이 앞선다. 어디로 갈까? 높은 봉우리는 부담스럽다. 긴 코스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이리저리 재어 보아도 만만하지 않다. ‘모르면 물어가라’는 격언처럼 지나가는 등산복 차림의 행인에게 길을 물어 다행히 낮은 능선을 따라 힘찬 발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은 말 그대로 산에 오르는 일이다. 산행을 하다보면 욕심이 생긴다. 더 높은 곳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숨이 턱밑까지 차는 깔딱 고개를 몇 구비 넘다 보면 서서히 넓고 푸른 하늘이 시야에 들어온다. 산마루에 도착한 것이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능선을 타고 흐르는 상쾌한 바람에 땀을 씻다 보니 산을 오르는 동안 보지 못한 나무와 바위, 하늘이 보이고 듣지 못한 바람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들린다. 이제야 산이 보인다. 산행을 하며 산의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하고 그저 산 정상을 향해 오르다 보니 눈은 감기고, 귀는 닫히고, 오감이 마비된 채 그저 산을 오르는 등산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사람 사는 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는 듯 싶다.
산에 오르는 것처럼 앞서가는 사람들의 뒤꿈치만 쳐다보고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뒤 돌아 본다. 하루에 한번이라도 하늘을 보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 또한 그렇게 살아 왔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 ‘어떻게 사느냐’는 물음에 답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산에 오르는 것이 산행의 목적일까? 아니면 산을 보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일까? 산에 올라 산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진정 소중한 것들을 우리는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산을 오르는 등산(登山) 보다 산을 즐기는 유산(遊山)을 하기로 마음을 고처 먹었다. 정상을 향해 가지 않고 칠 팔부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다 보면 마음이 한결 여유가 있고 오감이 트여 눈과 귀가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왜 진작 등산이 아닌 유산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유산을 하듯 조금만 여유를 갖고 세상을 산다면 행복의 조각들이 마음에 가득 채워질 것 같다. 행복이라는 세 잎 크로바를 곁에 잔뜩 놔두고 행운이라는 네 잎 크로바를 찾아다니듯 실존하지 않는 허상의 파랑새를 쫓아 깔딱 고개를 넘고 또 넘는 것은 아닐까?
산은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보이지 않는다. 산을 보려면 산으로 부터 떨어져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삶을 보려면 삶으로 부터 떨어져서 삶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 비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산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등산일 수도 유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것이 순리다. 여유를 가지고 유산을 하며 정상에 오른다면 내려와야 하는 발걸음이 다소 가볍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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