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나재희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시장 상황과 관련해 '투기'를 여러 차례 언급한 배경에는 서울 집값에 여전히 실수요를 넘어서는 투기적 수요가 반영돼 있어 공급과 더불어 수요 억제책 병행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가 기본적으로 부동산 투기 중심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수요를 실수요자 중심으로 바꾸고 투기·투자 유인으로 부동산을 취득하는 일을 최소화하려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가 수도권 주택 공급을 중심으로 한 9·7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 공급 청사진은 이미 제시했지만 실질적 공급이 이뤄져 국민이 체감하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사이에 투기 수요가 개입해 시장이 다시 요동칠 조짐이 보이면 언제든 규제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실제로 고강도 대출규제를 담은 6·27 대책 발표 이후 서울 부동산 시장은 한동안 가격 상승폭 축소 흐름을 이어오긴 했으나 최근에는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상승폭 확대 양상이 감지된다.
한국부동산원이 이날 발표한 9월 둘째 주(9월8일 기준) 아파트 가격 동향을 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은 0.09%로 직전 주 대비 상승폭이 0.01%포인트 확대됐다.
6·27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강남구(0.15%)의 상승률이 0.06%포인트 높아진 것을 비롯해 서초구(0.13%→0.14%), 성동구(0.20%→0.27%), 마포구(0.12%→0.17%), 광진구(0.14→0.20%), 강동구(0.08%→0.10%), 영등포구(0.10%→0.11%), 양천구(0.09%→0.10%) 등 '한강 벨트' 권역에서 두루 상승폭 확대가 나타났다.
오름폭이 둔화했을 뿐 상승세 자체가 멈춘 것도 아니다. 올해 현재까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4.92% 올라 작년 동기간(3.15%)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6·27 대책으로 거래는 다소 진정됐지만 여전히 서울에 매물이 많지 않아 매도자 우위가 바뀌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수요를 분산하려면 분양이 필요하지만 분양은 공급에 시간이 걸리니 기존 주택에 수요가 몰리고 가격이 오르는 양상이 해소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 문제를 거듭 지적하며 '반복적 대책'을 언급한 만큼 토지거래허가구역 확대와 같은 추가 규제 카드가 등장할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린다.
현재 토허구역은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와 용산구 중심으로 지정돼 있으나 마포구, 성동구 등 한강 벨트 권역에서 최근 풍선효과가 일부 감지되는 상황이라 이들 지역의 가격 상승세가 계속 확대될 경우 정부가 토허구역 추가 지정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
앞서 9·7 공급대책에 국토교통부 장관의 토허구역 지정 권한을 확대하는 규제책이 포함된 것도 향후 토허구역 확대 가능성에 대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 당시 60%로 하향됐던 종합부동산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종전 수준인 80%로 되돌리는 방식도 직접적인 증세 없이 조세 효과를 내는 수요관리 카드 중 하나로 거론된다.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은 시행령 개정 사안이어서 정부 단독으로 시행할 수 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공정시장가액비율 상향,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적용 등이 추가 대책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공급대책이 발표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만큼 오늘 이 대통령 발언은 시장에 대한 경고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