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신민수 기자] "진짜와 구별할 수 없는데, 가짜라고 볼 수 있나요?"
지난 13일 공개 후 넷플릭스 비영어 쇼 부문 3위로 직행하며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레이디 두아'는 가짜 신분을 이용해서라도 자기 인생을 명품으로 바꾸려는 한 여자, 사라 킴(신혜선 분)의 처절한 욕망을 그린다.
이야기는 상위 0.1%를 겨냥한 하이엔드 브랜드 '부두아'가 새 시즌을 발표하는 파티 날, 하수구에서 신원 불명의 여성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강력수사대 소속 형사 박무경(이준혁)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시신과 함께 발견된 명품백의 주인이자, 부두아 아시아 지사장인 사라 킴의 뒤를 쫓는다.
하지만 무경이 찾은 사라 킴의 인생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짜다.
과거 백화점 명품관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쇼윈도 속 명품백을 보며 '저 백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한 뒤, 가짜 인생을 진짜로 만들겠다는 위험한 결심을 한다.
이후 그의 이름은 수 차례 갈아 끼워진다. 사채 빚에 시달리다 한강에 몸을 던지던 순간 그의 이름은 '목가희'였으나, 어느 순간 술집에서 일하는 '두아'로 둔갑하고, 악덕한 사채업자와 계약 결혼한 뒤엔 또다시 '김은재'로 바뀐다.
연이은 신분 세탁 끝에 '사라 킴'이라는 새 인생을 살게 된 그의 목표는 하나, 바로 자신이 만든 브랜드 부두아를 명품 반열에 올리는 것이다.
사라 킴은 허름한 신월동 지하 공장에서 탄생한 가방에 '명품'의 숨결을 불어 넣는다. 유럽 왕실에 납품하던 '100년 전통의 브랜드'라는 허구의 역사를 입히고, 상류층 사모님들 사이에 "진짜 부자는 '부두아' 백으로 구분한다"는 소문을 퍼뜨리는 방식이다.
또 명품거리 중심가에 차려진 매장은 철저한 입장 제한으로 구매자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도록 유도하고, 남는 재고는 모두 불태워 하이엔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그의 모습은 단순 사기를 넘어, 고도의 마케팅 심리전을 방불케 한다.
사라 킴은 자신이 그랬듯이 결핍이 낳는 욕망의 이면을 꿰뚫고 있었다. "진실은 빛과 같이 눈을 어둡게 합니다. 반대로 거짓은 아름다운 저녁노을처럼 모든 것을 멋지게 보이게 합니다. 다만 들키기 전까지."
이는 지난 2006년 실제로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가짜 명품 시계' 사건을 환기시킨다.
당시 '유럽 왕실에 한정 판매되는 100년 전통의 스위스산 시계'로 홍보됐던 이 브랜드는 사실 중국산 부품을 들여와 경기도 시흥의 한 공장에서 조립한 가짜 명품이었다.
실제 원가 8만~20만원대에 불과한 이 시계는 서울 청담동 매장에서 최고 9천750만원에 팔려나갔고, 스타들과 재력가들은 앞다퉈 이 '가짜 명품'을 과시했다.
극 중 재력가들이 사기 피해 사실을 알고도 자신의 품위가 떨어질까 봐 신고조차 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당시 사회상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하재근 대중문화 평론가는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별나게 사치품에 대한 욕망이 강한 나라"라며 "실제 사건에 빗대어 사치품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과 계층 상승을 향한 욕구 등을 풍자한 이 작품이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작품의 묘미는 경찰 조사실에 마주 앉은 사라 킴과 무경이 극 후반부에 펼치는 숨 막히는 심리전에 있다.
진실을 숨겨야만 하는 용의자와 진실을 밝혀야만 하는 형사로 만난 신혜선과 이준혁, 두 주연 배우의 팽팽한 연기 대립은 마치 연극 무대와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사라 킴의 자백을 받아내려는 무경은 "비밀은 결국 밝혀지고, 사람들은 손쉽게 떠나가고, 진실은 언제나 가혹하며, 환상은 결국 깨지기 마련"이라며 몰아붙인다.
하지만 자신까지 희생해가며 부두아를 지켜내려 안간힘을 쓰는 사라 킴의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그가 과연 치밀한 사기꾼인지, 아니면 노력의 결실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업가인지 혼돈에 빠지기도 한다.
사라 킴을 연기한 신혜선은 "그가 부두아를 지키고 싶었던 것은 그 브랜드 자체를 사라 킴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레이디 두아'는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물질만능주의 시대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진짜'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동안 우리가 '명품'이라 여겨 왔던 것들의 가치가 그 진정성에 있는지, 아니면 사치스러운 소비나 치장을 통해 얻는 계급과 허영심에 있는지 되짚게 한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이 작품은 명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명품을 소비하는 우리 사회의 헛된 욕망이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깨닫게 한다"며 "명품의 품질을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이를 통해 남들의 시선과 화제성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허황된 꿈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