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신문=이천용 기자] "사과가 금이 됐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속이 터집니다. 수확할 사과가 없어서 농민 대부분은 쥘 수 있는 돈이 없습니다. 17년째 과수원을 하는 데 이런 가을은 처음입니다."
사과 주산지인 전북 장수군 장수읍에서 만난 박덕열(57)씨가 갈색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사과를 솎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의 말처럼 올해 사과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른바 '금사과'가 됐다.
서울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전날(27일) 경매된 홍로 상품 10㎏의 평균 가격은 8만2천927원으로 작년 3만1천614원에 비해 2.6 배가량 뛰었다. 특품은 12만523원까지 올랐다.
사과 가격이 비싸져 소비자들 부담은 커졌더라도 농민들은 이득을 볼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수확량이 적고 품질이 낮아져 내다 팔 사과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해마다 홍로 1천500상자 정도 수확했는데 올해는 1천 상자를 채 못 채웠다. 다음 달에 따는 부사도 수확량이 절반 정도로 줄 것 같다"며 "사과 50개면 한 상자가 가득 찼는데 올해는 사과 크기도 작아서 70개는 넣어야 했다"며 한숨 쉬었다.
생산량이 크게 줄어든 건 냉해와 긴 장마 등 이상 기후로 분석된다. 지난 4월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면서 박 씨의 과수원은 냉해 피해가 났다.
4월은 분홍색을 띤 사과 꽃잎이 자라며 풍선 모양으로 부푸는 시기인데, 서리를 맞아 암술과 수술이 얼어 쪼그라드니 제대로 된 사과가 달릴 리 없었다.
박씨는 "사과꽃이 만개할 시기에 서리가 내렸다. 원래 장수읍은 냉해 피해가 크지 않는데 올해는 유독 심했다"며 "그때부터 어차피 수정하지 못할 테니 농사를 포기한 농가들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탄저병도 창궐했다. 탄저병은 열매에 크고 작은 흑갈색 반점이 생기면서 과일이 썩는 병이다. 주로 5월부터 포자를 만들었다가 비가 오면 빗물을 타고 확산한다.
박씨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탄저병이 심하고 빠르게 번지는데 올해 유달리 길고 강한 장맛비가 이어지면서 사과들이 다 썩었다"며 "부사는 홍로보다 탄저병에 강한 품종인데, 부사마저 탄저병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주변 농가들도 모두 비슷한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탄저병이 과수원 전체로 번지면서 전혀 수확하지 못한 농가도 있다고 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역시 개화기의 서리·우박 피해와 긴 장마, 탄저병 등으로 올해 사과 생산량을 지난해 대비 21% 감소한 44만9천t으로 전망했다.
그는 "이미 봄에 농약을 치고 사과꽃을 따면서 인건비나 농약값이 나갔는데, 수확을 못 하면 농가들은 빚을 고스란히 안게 되는 것"이라며 "영주 등 경북 지역도 돌아봤는데 그쪽도 피해가 비슷했다. 장수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탄저균은 영하 40도에도 쉽게 죽질 않기 때문에 제대로 방제하지 않으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며 "이상기후는 점점 더 심해질 텐데 올해는 그럭저럭 버텼다고 해도 내년이 또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장수군 관계자는 "한 해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재해가 지역 사과 농가들을 덮쳤다"며 "이 때문에 사과값이 올라 적은 수확량에도 평년과 비슷한 수익을 가져간 농민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다. 재해 피해 농가를 정확히 파악한 뒤 지원책 등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