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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추석 콩트] 추석님! 어서 오십시오!

  • 등록 2024.09.04 17:05:10

“으매나! 아이구나! 여보! 여보!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은 참말루 좋겠네잉! 4일 연휴가 아니라 한 열흘은 드립다 쉬구 놀구 헐 것잉께 말유! 호호호흐!”

 

그토록 기나긴 폭염과 열대야에 지긋지긋한 여름을 보냈는데, 마치 심뽀 사나운 예쁜 아가씨가 싸악 변심하듯이 어느새 아침저녁엔 제법 선들바람이 부는 9월 초순에 마누라가 주방 벽에 걸린 달력을 바라보며 이처럼 호들갑을 떨어오는 말이었다. “아이고! 8순 넘은 할매가 웬 호들갑이여? 올 추석 연휴는 4일인디, 무슨 열흘을 쉰다구 그런 허풍을 떠는거여?”

 

이에 나도 달력을 바라보며 대꾸하자 마누라가 이런 엉뚱한 대꾸를 해왔다.

 

“아이구! 안 구류? 올 추석 연휴의 빨간 글씨는 15일부터 18일까지 4일이지만 보나마나 개인직장에선 앞댕겨 13일 금요일부터 휴무에 들어가서 19일 목요일과 20일 금요일은 22일 일요일을 대체휴무로 꿔다 써서 22일까지 무려 열흘간 추석연휴가 될게 뻔하지 않느냔 말유?”

 

 

아닌게 아니라 문예잡지 발간을 하는 내가 보면 충무로의 출판사나 인쇄소에선 추석이나 설 연휴가 다른 직장에 비해 4.5일씩은 더 길었던 것이다.

 

“으음! 당신은 추석 연휴를 늘려 놀려구 벌써부터 김치국 마시는구먼!”

 

“아유! 그런 소리 마슈! 이번 여름은 열대야가 최장이라지만 그래두 추석이면 제까짓 무더위가 더 버티겄슈? 그렁께 추석님! 어서 오세유! 허구 빌게 되지유!”

 

마누라의 이런 소리가 아니라도 어느새 2024년 추석명절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으음! 이래서 추석명절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구 했겄지?”

 

 

“암유! 뭐니뭐니해두 우리나라 명절 중엔 설보담두 추석이 더 즐거운 명절이쥬! 날씨는 소슬허구 객지에 나가있던 식구들까지 모두 모여 햇곡식 햇과일루 차례지내구 그냥 즐겁게만 보내는 추석이야말루 부담없이 월매나 좋은냔 말유?”

 

마누라의 이런 너스레를 듣는 순간 나에게는 어려서 내 고향 청양에 살 때 추석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야! 인집아! 영전뜰 논의 노인벼가 추석 잘 쇠라구 누렇게 익었겠지?”

 

“야아! 올해는 참새들두 햇벼를 쪼아먹지 않아 벼낟가리가 축축 늘어졌네유!”

 

그리하여 우리 바깥마당에는 멍석위에 벼홀태가 놓여지고 누렇게 익은 노인벼를 훑어서 햇볕에 말려서는 절구로 팡팡 찧어 햇송편과 차례상 메를 지을 쌀을 만들었던 것이다.

 

“아유! 즈이아부지! 청양장에 가서 추석차례상 제물을 사오셔야쥬!”

 

이리하여 우리집에는 벌써 추석상 제물도 마련되었고, 우리들은 추석날 며칠 전부터 집안의 대청소를 했는데 항상 이건 내 차지가 되었던 것이다.

 

“얘! 은집아! 마루밑부터 뒷곁까지 쓰레기 싸악 치우구, 마루두 번질반질허게 딲어야 혀! 알았지?”

 

그런데 이런 잔소리와 대청소에도 꿀먹은 듯 내가 싫단 대꾸를 안 했던건 어머니께서 말 잘 듣는 자식에게 먼저 추석빔을 만들어 주셨던 것이다.

 

“에이유! 은집이 넌 밥 먹은 건 다 어디루 가구 이리 키가 크질 않느냐? 그렁께 넌 작년에 입던 추석빔을 빨아서 대림질해 입구, 키가 큰 애들이나 새루 마련해 주어야겠다!”

 

이렇게 어머니께선 말씀하셔서 나는 어찌나 속이 상했던지, 달 뜨는 밤에 감나무 아래에 가서 남몰래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것이다.

 

“근디 서울에서 미군부대에 댕기는 늬 큰성(형)은 올해에는 또 어떤 추석선물을 사오려나? 궁금해서 못 견디겠네잉!”

 

우리 큰누나가 이런 소리를 꽁냥거리는 건 큰형이 누나들에겐 추석선물로 동동구루무를 사오기도 했던 것이다.

 

“에잉! 난 연필만 사오지 마시구 연필깎이두 사다 주셨으면 월마나 좋을지 모르겄어!”

 

암튼 그 시절의 추석이면 우리 집은 서울에 사는 큰형이 이런 학용품뿐 아니라 어머니에겐 나일론 저고리를, 아버지에겐 국방색 외투를 선물 드렸고, 아홉명이나 되는 우리 형제자매에게는 양말이라든지 암튼 갖가지 추석선물을 사왔으니 동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마을 동무들은 부러워서 입을 비쭉거렸고, 그래서 우리 집만 추석 명절의 기쁨을 독차지한 기분이었던 것이다.

 

“에이유! 저 양지뜸 은집이네는 좋겄어! 올 추석에두 큰아들이 서울에서 온갖 선물을 리꾸샥꾸로 가득 사왔다지 뭔감?!”

 

내가 이런 추석의 추억에 잠겼는데 마누라가 다시금 엉뚱한 소리를 해왔다.

 

“여보! 올 추석엔 애들두 분가해 추석 용돈도 가져올건디 당신은 나한테 월마나 쏠꺼유? 맨날 신사임당 두어장인디 지금은 돈을 뜯어가는 식구두 없구 허니, 한 열장만 봉투에 담아 터억 한번 내놔보슈! 아유! 그걸 생각허니께 이런 소리가 절루 나오네유! 추석님! 어서 오세유! 호호호!!”

 

이은집 : 문래동 거주. 충남 청양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저서 <통일절> <스타 탄생> <응답하라! 사랑아! 결혼아!> 등 35권 발간. 영등포문인협회 고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방송작가와 작사가로도 활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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